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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무겁다


오랜만에 너무도 정직한(?)시들을 읽은 기분이다. 모든 시간이 해결해 준다는 말이 ,잔인하게 들린 적이 있었다.도저히 끝날것 같지 않은 시간에서 벗어나기 위해 있는 사람에게, 시간이 약이다 라는 말은 사실 위로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막상 끝날 것 같지 않은 그 터널을 지나고 보니,시간은 약이 되기도 했으며,심지어 달기까지 했다는 것을 알았다.그래서 여전히 무서운 터널의 시간을 만나기도 하지만,견디어 낼 수 있는 구둔살은 가지고 있는 셈이다. 시인은 그 고통의 시간을 ~무겁다 라고 표현하고 있었다. 당신만이,힘든 시간은 보내고 있는 것 같겠지만 여기 힘들게 보내는 또 다른 이들이 있다고... 그래서 동료애도 느껴지고,때로는 나의 고통은 고통 축에 들지 않는다는 것을 느끼게도 된다. 차전초 차전초는 질경이의 한자말 수레바퀴에 깔리면서 살아가는 풀 바퀴에 깔려 몸이 납작해지며 숨이 넘어가는 순간 제 씨앗을 수레바퀴나 짐승들 발밑에 붙여 대를 이어가는 풀 모든 풀들은 짓눌리는 고통을 피해 들로 산으로 달아나 함께 살아가는데 그늘 한 점 없는 길가에 몸 풀고 앉아 온몸이 깔리면서 생을 이어간다 수레의 발길이 잦을수록 바퀴가 구를수록 더욱 안전해지면서 멀리 가는 삶 질경이는 밟히면서 강해진다 밟혀야 살아남는 역설의 생 오늘도 납작한 잎 속에 질긴 심줄 숨기고 온몸 펼쳐 뭇발길 받아들인다 어디 한번 멋대로 분탕질도 해보라며 거친 발길에 제 몸 맡긴다 차전초를 읽는 순간 질경이는 그저 꽃으로 불리는 질경이가 아니였다. 지금도 여전히 고통 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그래서 시간이 빨리 흘러가기만을 바라는 이들의 모습이였다. 그럼에도 내 마음가는 대로 위안을 받고자,질경이의 삶이 밟혀 죽는 것이 아니라,그럴수록 강해지는 그 정신을 시인이 주는 희망 의 텍스트일 것이라 믿고 싶었다. 뭉크가 절규 하듯, 시간처럼 무거운 물건은 보지 못했네 라고 시인은 말하지만.. 그럼에도 시간은 흘러간다는 것.
1983년 광주일보 신춘문예와 무크지 시인 을 통해 작품활동을 시작한 고광헌 시인의 두번째 시집.
첫 시집 신중산층교실에서 이후 무려 26년 만에 선보이는 이 시집에는 촉망받던 농구선수에서 해직교사, 사회운동가, 언론사 대표 등의 이력을 거치며 격동의 한 시대를 온몸으로 살아온 시인의 신산한 삶과 올곧은 정신이 오롯이 담겨 있다. 지나온 삶의 짠한 곳을 콕 집어내어 환하게 하고 아득하게 하는 아름다운 시들 이 잔잔한 울림을 던지며 가슴을 울컥, 하게 만드는 깊은 감동을 자아낸다.

지난 세월, 암울한 시대에 맞서 온몸으로 최루탄 산발하던 시간 속 으로 달려왔던 시인은 잠시 가쁜 숨을 가다듬고 유일하게 평화로 남은/유년의 시간 을 거슬러 올라간다. 상처로 얼룩진 쓰라린 시대를 견뎌온 ‘어머니’의 기품을 가슴에 새기며 가파른 삶의 현장을 숨가쁘게 달리기도 하고 섣부르게 이기려는 흉내 내면서 백미터 달리기로 살아온 세월 을 되돌아보며 반성과 성찰의 시간도 갖는다. 오랜 시간이 지났어도 여전히 빈집에/홀로 피어/발길 붙드는 꽃들 에게서 애정어린 눈길을 거두지 않고, 하찮게 보이는 것에 도 희망을 품는 시인의 다감한 마음은 변함없이 희망의 노래가 되어 읽는 이의 마음에 퍼져나갈 것이다.


제1부
상처를 상으로 받아야 시인이지
만물일여(萬物一如)
어머니가 쓴 시
다시, 어머니가 쓴 시
시간처럼 무거운 물건 보지 못했네
어머니의 달리기
빈집
마흔
누님의 우물
정읍 장날
즐거운 추억
강수진
노래
나무들은 반듯하다
박수근

제2부
난(蘭)
가을 단상
내장산 단풍
폭설 대란
나는 참꽃이지
가을 내소사에서 아버지를 보았다
성불
겁에 질린, 취하지 못하는
공덕동 풍경
이제 용서를 말하겠네
불감증
도배
연옥에서 한 시절
봄 왔으니 봄이어야겠네

제3부
채송화
해바라기
차전초
백척간두
가을, 도봉에 올라
몸에 대하여
잔인한 소멸
늙은 시멘트 역기짝
큐레이터는 혼자였네
나무못이 쓴 건축사
회기동 한 시절
옛 그림자
어느새 축복이 발목 덮어주시네
오누이

제4부
EU의 노동법이 깔린 도로에서 김진숙을 생각하다
그대, 다시 박수 받지 못하리
겨울 등고선

그분
다시, 광화문
사랑, 영원한 사랑
무국적 한국인
아관파천
그런 꼬라지 될 바엔 차라리 통일 안했으면 좋겠다
한열이 어머니
한라산
판문점에서
산에서 부르는 출석

해설-고명섭
시인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