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국가가 어떻게 형성되고 또 어떻게 소멸하는지를 살펴보다 보면 어느 시대에나 비슷한 요소를 찾게 된다. 국가의 토대가 세워지던 초창기, 각 사회는 진취적인 기상을 뽐내게 된다. 하지만 한 국가 질서가 점차 안정화 단계에 들어서면서 그 사회는 점차적으로 보수적인 성향을 띠게 되고 고착화된 권력의 양상은 부정 부패로 이어지게 된다. 피지배 계층의 움직임이 나타나는 것도 바로 이 때이다. 견고하던 토지, 조세 제도 등이 더 이상 제 역할을 하지 못할 때마다 우리 역사는 소위 ‘난(亂)’ 이라고 불리는 현상을 경험하게 된다. 처음에는 그저 잘못된 제도를 시정해줄 것을 요구하는 미약한 움직임으로 출발한다. 그 과정에서 그들이 제기한 문제가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을 경우 기존의 지배 계급이 지니고 있는 권력의 정당성에 의문을 제기함으로써 사회 질서를 크게 흔든다. 혼란을 통해 새 질서를 창조하는, 어쩌보면 이는 일종의 변증법적인 흐름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고려 후기 만적의 난을 비롯하여 조선 후기 진주 민란까지 있었음을 기억한다면 우리 역사가 지난 날 외세에 의해 주장되었던 것처럼 그리 밋밋하지만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역사 속에 존재하는 모든 난에 가담했던 이들이 근본적인 신분 제도의 모순을 자각하고 만민 평등을 부르짖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들은 문제가 된 관리를 다른 인물로 바꾸길 희망했고, 새로운 인물에 의해 보다 나은 정치가 구현되길 꿈꾸었다는 점에서 근대적이기 보다는 봉건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를 변혁시키고자 하는 운동이 얼마나 진보적인가를 고려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운동이 존재할 수 있었다는 것이 어쩌면 더 중요하다고 난 생각한다. 이는 민중들이 자신들의 목소리를 하나로 결집, 거대한 힘을 이끌어낼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음을 보여주는 예일 테니 말이다.
이 책이 다루고 있는 것은 1890년 함창에서 발생한 농민 항쟁이다. 우리에게 진주 민란만큼 널리 알려져 있진 않지만, 적어도 관련 자료만큼은 진주 민란보다도 많이 남아 있는 듯하다. 기록은 실로 정확하고도 자세하여, 어떠한 계기로 인하여 난이 발생했으며 주동 인물은 누구인지, 더 나아가 그 과정이 어떻게 전개되었는지를 이 책은 상세히 다루고 있다. 이는 단지 함창에서 발생한 하나의 난을 살펴보는 것 이상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즉, 신분 제도가 동요하고 사회 전반이 문란해졌던 조선 후기, 사회 곳곳에서 일어났던 난들은 아마도 합창에서와 비슷한 양상을 지녔을 것으로 우리는 추정해볼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모든 농민들이 깨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분명 난은 소수의 지도층에 의해 주도적으로 행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이 대중적(?)인 흐름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 농민들의 삶이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정부의 무능 역시 이들의 움직임이 거세질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삼정이정청을 설치하고 암행어사를 파견하긴 했지만 이 모든 것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었다. 오히려 정부는 난을 일으킨 농민들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함으로써 전통적인 지배 질서를 보다 공고히 하기에 급급했던 것이다. 주동자들을 잡아 들여 효수하고 수많은 이들을 귀양 보냄으로써 거대했던 움직임은 해체되었다. 그 이후에도 관리들의 비행이 계속되었고 결과적으로 조선 사회가 멸망을 향해 치달을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통해 우리는 난의 진압이 곧 문제의 해결은 아니었음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역사는 현재 안에서 끊임없이 재해석되어지기에 과거일 수 없다. 지금 이 순간 행해지고 있는 수많은 일들이 훗날 어떻게 해석될 것인가를 상상하는 일은 그래서 즐겁고도 괴롭다. …
일찍이 정약용은 농민들이 항상 난을 생각하고 있음 을 걱정했다. 그로부터 100년 뒤인 19세기에 이르러 그의 말은 현실이 되었다. 당시 일어났던 수많은 농민항쟁 중 이 책이 주목하는 것은 바로 1890년 함창에서 일어난 농민항쟁이다. 함창 농민항쟁은 역사적으로 보자면 그리 중요한 사건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 항쟁에 대한 기록이 누가, 언제, 어디서 일으켰다 정도의 정보에 그치고 있는 데 비교한다면, 함창농민항쟁은 항쟁 당시의 세세한 기록들을 상당량 남아 있어 그 생생한 현장을 복원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중요성을 확보할 수 있다. 따라서 당시 농민들의 목소리를 재현하여 당시의 상황을 좀더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쓰인 점에서 이 책의 집필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책을 내면서
1. 한말 함창 고을을 되돌아보다
농민항쟁이 불붙기 시작하다
작은 고을 함창의 사정
가혹한 세금
2. 함창 농민항쟁이 일어나기까지
이서층과 향인층의 농간
부세를 매기기 위해 열린 향회
분노를 자아낸 관남지 준설 공사
3. 드디어 항쟁이 일어나다
항쟁 전야
농민봉기가 일어나다
동헌을 공격하다
격화되는 농민항쟁
4. 관이 농민항쟁에 대응하다
중앙에서 대책 마련에 나서다
숱한 병력을 동원하여
폐단에 대해 조사는 했지만
5. 농민들의 뜻은 스러지고
광범위한 심문이 이루어지다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사람들
글을 마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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