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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고전을 읽는가


칼비노는 정리를 참 잘 한다. <어느 겨울밤 한 여행자가>같은 경우도 보면 문장 하나로 한권의 소설을 구성하는 꺼리로 만드는데, 아마 초장에 보면 책을 읽는 자세에 대해 잘 정리되어 있었지. 여기서도 초장에 고전이 뭔가를 일목요연하게 설명한다."고전이란, 우리가 누구이며 우리가 어디에서 왔는지를 이해할 수 있게 도와 주는 것.우리가 인정할 수 있는 단 한가지 사실은 고전은 읽지 않는 것보다 읽는 것이 났다는 것이다."문제는 이 에세이집이 고전을 의식하고 쓴 게 아니라는 점이다. 그냥 책에 대해서 쓴 것이고 거기에 고전도 있고 고전이라고 하기가 애매한 책들도 있다. 보는 사람에 따라 고전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겠지만. 칼비노가 195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간간히 써서 게재했던 것들을 사후에 모아서 책으로 엮어낸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대단히 이탈리아적으로 보인다. 세어 보지는 않았지만 전체글 수의 반정도는 이탈리아 작가들이다. 물론 이탈리아인이 아닌 작가들도 많다. 훨씬 많을 수도 있다. 이탈리아 사람이 이탈리아에서 이탈리아 독자들을 상대로 쓴 글들 일테니 이탈리아적인 것은 당연한 것일텐데, 이 책을 읽는 내 입장에서는 전체 글 중에 반 정도는 덜어 냈으면 좋았을 뻔 했다. 물론 내가 알지도 못하고 들어본 적도 없는 작가들이어서 그런지도 모른다. 내가 칼비노의 의식의 흐름을 좇아가지 못해서 그럴 수도 있다. 또한 우리나라에서 구할 수 없는 책도 많다.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칼비노의 안목은 넓고 깊고 세심하다. 고전 속에서 다시 고전을 찾아낸다. 오딧세이아 속에 여러 오딧세이아가 중첩적으로 들어 있었다니. 햄릿이 읽은 책을 찾아내고, 돈키호테 속의 책화형식에서 살아남은 책들, 돈키호테의 선배들을 찾아낸다. 모두들 다 아는대표 고전이 아닌 고전 작가의 다른 고전도 찾아낸다. 대표작만이 뛰어난 게 아니라 작가의 다른 작품도 있다는 것. 아니 고전작가의 대표작을 평하는 게 아닌 다른 작품을 맨 앞으로 끌고 나온다. 일반적으로 <노인과 바다>를 <모비딕>의 연결선상에 위치시키는데 칼비노는 견해가 좀 달랐다. 얘기를 듣고 보니 그런것 같기도 하다. 평론가 필립 영의 말을 인용한다."<노인과 바다>를 한 권의 위대한 책이 앞서 열어 놓은 전통 속에 위치시킨다. 즉 소설의 언어, 현실과 모험에 대한 풍부한 묘사, 자연에 대한 감정, 당대의 미국이라는 국가의 사회적 문제에 천착했다는 면에서 마크 트웨인의 위대한 작폼 <허클베리 핀의 모험>이 세운 전통 안에 위치 시킨 것이다."이 양반 덕분에 내가 읽어야 할 책이 많아졌다. 목록에 여러권이 쌓인다.
보르헤스, 마르케스와 함께 현대 문학의 3대 거장으로 꼽히는 작가 이탈로 칼비노가 호메로스, 오비디우스 등의 고대 작가에서부터 스탕달, 톨스토이, 플로베르, 발자크를 비롯해 마크 트웨인, 찰스 디킨스, 헨리 제임스, 보르헤스 등의 현대 작가에 이르기까지 30여 명의 고전 작가들과 그 작품들에 대해 쓴 개인적인 독서기이다

이 책에 담겨 있는 칼비노의 작가들에 대한 열렬한 찬양과 독창적인 설명을 들으면, 독자들은 마치 그의 애독서가 꽂힌 서가를 둘러보는 듯한 기분에 사로잡히고, 그러다 보면 어느새 그의 열정에 전염되어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서문

왜 고전을 읽는가
오디세이아 속의 여러 오디세이아
크세노폰의 아나바시스
오비디우스와 우주의 인접성
하늘, 인간, 그리고 코끼리
네자미의 일곱 공주
티랑 로 블랑
광란의 오를란도 의 구조
아리오스토의 명시선
지롤라모 카르다노
갈릴레오와 자연이라는 거대한 책
달나라의 시라노
로빈슨 크루소와 상인으로서 갖춰야 할 덕목에 관한 일기
캉디드 의 서술 속도에 관하여
드니 디드로의 운명론자 자크
자마리아 오르테스
스탕달과 먼지구름으로서의 지식
스탕달의 파르마의 수도원 의 새로운 독자들을 위하여
발자크와 소설로서의 도시
찰스 디킨스의 우리 서로의 친구
플로베르의 세 편의 이야기
톨스토이의 두 경기병
마크 트웨인의 해들리버그를 타락시킨 사나이
헨리 제임스의 데이지 밀러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해변의 별장
콘래드와 선장
파스테르나크와 혁명
카를로 에밀리오 가다의 아티초크와도 같은 세계
가다의 메룰라나 가(街)의 무서운 혼란
에우제니오 몬탈레의 시 「어느 날 아침」
몬탈레의 절벽
헤밍웨이와 우리 세대
프랑시스 퐁주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레몽 크노의 철학
파베세와 인간 희생 제의

편집자 주
옮긴이의 말―칼비노의 문학 지도를 따라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