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 논쟁
책의 서문에 이런 구절이 있다. "사실 이 글들은 객관적으로 보자면 번역한 박사 학위를 소지한 번역한 연구자가 쓴 논문들이라고 소개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이 문장에 사용된 여러 단어들에는 작가의 해석이 붙어 있지만, 요점은 명확하다. 논문이다.
번역의 태생적 한계라는 흥미로운 점을 짚고 있지만, 번역관련 일에 종사하고 있는 관계자가 아닌 그저 번역에관심을 가지고 있는 일반 독자에게는 다소 장황하고 난해한 설명이 많다. 논문을 쓸 때도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쉬운 글쓰기를 지향했던 사회과학을 전공했기 때문인지 아쉽게 느껴지는 부분이었다.
하지만, 제목처럼 논쟁거리가 될 흥미로운 소재가 넘쳐나는 책이다. 번역에는 태생적인 한계가 있다. 원작가의 손에서 완성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더 비판의 소재가 크다. 원작에 대한 사랑이 클수록 그것을 완벽하게 모국어로 옮기지 못한 번역자에 대한 분노가 커진다. 이 책은 그런 분노하는 독자들에게던지는 변론이다.
책의 3부로 나뉘어 구성되어 있는데, 책의 1부에서는 번역 이론들을 다루고 있다. 여기에서는 번역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던진다. 번역이 과연원서를 번역한 시대의 문화, 권력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가와 직역과 의역 중 어떤 것이 더 올바른 번역인가에 대한 의문이 던져진다.
난제다. 번역은 원작자의 작품을 그대로 옮기는 것이다. 하지만, I love you라는 문장을 나는 사랑한다, 너를 이라고 번역할 수는 없지 않는가. 대부분은 사랑해 라고 옮기겠지만, 나쓰메 소세키는 이 문장을 오늘은 참 달이 아름답네요 라고 번역했다. 그리고 이 말은 일본인들의 가슴을 깊이 울렸다.
또한, 단순한 한 문장의 번역이아니라, 책의 전체에서 서로 상관관계를 이루고 있는 문장을 번역하는 일은 더 많은 사유를 요구한다. 또한, 작가가 언어유희를 즐긴다면 번역가로서는 당혹스러울 것이다. 언어유희를 넘어서 새로운 언어를 만들어 내는데 관심이 많은 작가라면 낭패스러운 일일테고.
2부에서는 번역 비평의 이론과 실제를 다루고 있다고 했는데, 번역 비평이 아니라 비판(혹은 비난)이 되는 현실을 말하고 있다. 외국어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원서 한두권씩은 읽을 수 있는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자신이 읽었던 느낌과 조금이라도 다르면 독자는 이름이 올라와 있는 번역가 를 비판하게 된다.
남 말할 때가 아니다. 사실은 나도 번역때문에 읽던 책을 포기한 적이 있으니 말이다. 모 소설에서 bitch를 쌍년으로 번역하는 바람에 원서를 사서 보기 시작했다.문화적인 차이로 인해 주인공은 깍뜻한 존댓말을 쓰면서 쌍년 을 입에 달고 다니는 그런 아이가 되어 버렸다. OMG.
그리고 3부에서는 실제 번역담을 말하고 있는데, 지하철소녀 쟈지 를 중심으로 자신의 번역 경험담을 말하고 있다. 작가의 특수성도 있겠지만, 프랑스 소설 자체가 가지는 풍부한언어유희적 측면을 어찌하겠는가 싶다.
번역이 어느 순간 도마 위에 올랐다. 링 위에 상대방 없이 올라서서 일방적으로 매타작을 맞고 내려와야만 했던 번역가들도 꽤 되었다. 실제로 번역을접으면서 블로그도 접고 사라지신 분을 봐서인지 안쓰러운 마음도 크다.
그리고 그런 사건들을 통해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번역의 열악한 실태도 까발려졌다. 챕터로 나눠 번역을 하고, 번역자의 이름에 올리지 못하는 초보 번역가들의 비애와 촉박한 시일 측정, 터무니 없이 낮은 번역료 등등. 번역의 태생적 한계만을 논하는 것이 아니라,그 외의부수적인 부분도 같이 논하고 시정해야아닌가 하는 안타까움이 남는다.
번역학계와 번역 현장에서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생각들은 과연 당연한가? 실제로 번역실무를 행하는 번역가 집단과 연구자 집단사이에서는 사소한 문제로 인한 견해차가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에 이 책은 번연에 대한 여러 단상들을 저자의 경험에 비추어 정리했다. 1부에서는 번역 이론을, 2부에서는 번역 비평의 이론과 실제를 3부에서는 구체적인 번역 경험을 논한다.
머리말
제1부 번역을 사유하다
우리의 번역 지평과 서구의 번역 이론
직역론의 새로운 갈래와 번역 패러다임의 변화
베르만과 메쇼닉의 번역 이론 이해를 위하여
- 속담 번역의 상징적 위치
제2부 번역을 읽다
문학 번역 비평을 위하여
문학 번역 평가에서 문학 번역 비평으로
〈시〉를 찾아서 - 장 콕토의 무서운 아이들 번역 읽기
기하학적 균형미의 실종
- 모파상의 비곗덩어리 번역 읽기
초역과 두 개의 재번역 - 네르발의 「옥타비」번역 읽기
번역 서평의 폭력성 - 에콜로지카 번역자
정혜용이 바라본 오주훈 기자의 에콜로지카 서평
제3부 번역이 존재하다
레몽 크노의 지하철 소녀 쟈지
번역, 차이의 글쓰기 - 말놀이 번역을 중심으로
번역 실천과 〈번역 시학〉이 만나는 그곳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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